황혼 이혼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 묻고 싶은 3 가지 질문

 

김순례 씨(가명, 64세)는 오늘도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남편은 TV 앞에, 그녀는 부엌 식탁에. 38년째 이어온 풍경입니다.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화가 나지도 않습니다. 화가 날 에너지조차 아껴두고 싶어서입니다. 

매일, 그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까.' 막내가 결혼하고 집을 비운 지 어느새 3년. 이제, 이 집에는 둘뿐입니다. 두 사람과 그 사이의 긴 침묵만.

황혼 이혼. 그 단어를 처음 떠올린 건 작년 봄이었습니다. 친구 미경이가 이혼하고 혼자 제주도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게 엄청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순례 씨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생각을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 그 고통은 '이 사람' 때문인가요, 아니면 '이 시간' 때문인가요?


순례 씨가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스물다섯이었습니다. 당시 남편은 성실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조용함은 더 이상 안정감이 아니라 단절처럼 느껴집니다.

언제부터 달라진 걸까요. 아이들이 생기고, 시어머니 병수발을 하고, 남편 사업이 흔들리던 그 몇 년. 부부가 함께 지나온 터널들. 그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당신이 밉다기보다는... 이 삶이 지쳤어요. 근데 그게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어요." — 상담사를 찾아간 날, 순례 씨가 한 말

상담사는 한참 듣고 나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만약 지금과 다른 상황에서 남편을 만났다면, 그래도 지금처럼 느꼈을 것 같으세요?" 순례 씨는 그 질문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수십 년을 살다 보면 배우자와의 관계에 수많은 것들이 겹겹이 쌓입니다. 경제적 스트레스, 자녀 문제, 역할에 대한 기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온 — 혹은 표현하지 못한 — 감정들. 그것들이 뭉쳐서 어느 순간 한 사람을 향한 감정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다만,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이 사람이 지쳤는가, 아니면 이 삶이 지쳤는가.

선생님께 묻습니다. 만약 지금 이 사람이, 다른 조건과 다른 시간 속에 있었다면 — 나는 여전히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요? 지난 1년간, 이 사람으로 인해 힘들었던 일과, 이 상황으로 인해 힘들었던 일을 떠올려 구분해볼 수 있나요?



두 번째 질문 이혼 이후의 그 아침을, 한 번이라도 그려봤나요?


순례 씨는 상상해봤습니다. 혼자인 집. 조용한 아침. 아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상상은 처음엔 달콤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려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낯선 불안이 들어왔습니다. 그 조용함이 자유가 아니라 공허로 느껴지는 순간들. 아플 때 옆에 아무도 없는 밤. 명절에 아이들이 어느 집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들.

친구 미경이는 제주도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통화에서 잠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잘 살고 있어. 근데 있잖아, 생각보다 혼자라는 게 진짜더라." 웃으면서 한 말이었지만, 순례 씨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혼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인 동시에, 새로운 삶으로 들어서는 일입니다. 황혼 이혼은 그 두 번째 부분이 특히 선명해지는 나이에 하는 결정입니다.

경제적 독립이 가능한가. 노후 자산은 어떻게 나뉘는가. 건강이 나빠질 때 곁에 있어줄 사람은 누구인가. 자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이혼을 막는 질문이 아니라, 이혼을 준비하는 질문입니다.

눈 감고 뛰어내리는 것과 눈 뜨고 발을 내딛는 것은 다릅니다.

선생님께 묻습니다. 이혼 후 반 년이 지난 어느 평범한 월요일 아침 — 당신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그 하루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나요? 그리고 그 그림 속에, 당신은 괜찮아 보이나요?



세 번째 질문 마지막 시도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해봤나요?


이 질문이 가장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더 참으라는 거야?"라고 들릴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그런 뜻이 절대 아닙니다.

순례 씨는 38년을 참아왔습니다. 말하지 못하고 삭였고, 말했다가 싸웠고, 싸우다가 지쳐서 포기했습니다. 그 시간들을 겪어온 사람에게 "아직 덜 참았어요"라고 말하는 건 폭력입니다.

"그 사람한테 이혼하고 싶다고, 직접 말한 적은 있어요?" — 상담사의 질문

"...아뇨. 그냥 눈치채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 순례 씨

그 대답을 하고 나서, 순례 씨는 울었습니다. 그 동안, 한 번도 "나는 이 결혼이 힘들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이혼과 현상유지 사이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길이 있습니다. 부부 상담, 진짜 대화, 별거, 각자의 생활. 그 길들이 꼭 관계를 회복시켜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보고 나서 내리는 결정은, 걷지 않고 내리는 결정과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라는 확신이 있을 때 — 그 결정은 훨씬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후회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마지막 시도가 관계를 살리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 시도는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선생님께 묻습니다. 배우자에게 "나는 지금 이 결혼이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으시나요? 부부 상담이든, 진지한 대화든, 그 어떤 형태로든 — 마지막 시도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셨나요?



에필로그

순례 씨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 처음으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 요즘 너무 힘들어요."

남편은 TV를 끄고 그녀를 바라봤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대화가 관계를 바꿀 수도 있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례 씨는 말했습니다. "그냥 내가 좀 후회가 없고 싶었어요."

황혼 이혼이 잘못된 선택이 아닙니다. 남은 삶을 더 존엄하게 살기 위한, 근사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선택이 빛나는 건 —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이 3가지 질문을 던져본 이후일 것입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이든, 그 시간만큼은 내 것으로 살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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