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26의 게시물 표시

사람의 능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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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서 산에 올랐다.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빼곡히 들어선 건물들, 그 사이를 오가는 작은 사람들. 그 풍경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람의 삶이란 것이, 별 것 아닌 듯하다. 저 사람들 중에 누가 뛰어나고 누가 못한 것인지, 여기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인간의 능력이란 게 그게 그것처럼 느껴진다. 잘나고 못나고, 성공하고 실패하고 — 그 모든 것이 같은 높이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위 공무원도, 의사도, 변호사도, 사장도, 이름 없는 사람도 다 거기서 거기다. 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내가 그토록 애쓰고 이루어 놓은 것들이,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은 순간. --- 그런데 막상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학자로 살아오면서, 나는 대단한 학자들을 여럿 보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하는 사람. 보통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자리에서 끝내 버텨낸 사람. 매일 새벽 2시까지 책을 보시던 분.  이런 사람들 앞에 서면, 인간의 능력이란 것이 결코 다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 사람의 능력이기도 하다. --- 그렇다면,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두 가지 생각이 모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틀린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이것은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질문 일지도 모른다. --- 다만, 살면서 하나 알게 된 것이 있다.  남과 비교하는 눈으로 바라볼 때, 능력은 언제나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을 때, 능력은 조금씩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남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진 것 — 어쩌면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성장의 모습일 것이다. ---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

배우자의 코골이와 잠버릇, 수면의 질을 지키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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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깊어지면, 슬그머니 시작된다.  처음에는 작게, 그러다 리듬을 탄다. 커진다. 옆에 누운 사람의 코골이다. 결혼한 지 30년이 훨 넘었건만, 이 소리 앞에서는 여전히 잠이 달아난다. 밤새 뒤척이다, 어느새 새벽 2시가 되어 있다. --- 많은 부부가 이 문제를 겪는다.  그런데 묘하게도, 낮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 코를 곤 당사자는 기억조차 못 하고, 뜬눈으로 밤을 보낸 쪽만 혼자 피로를 안고 아침을 맞는다. 이 어긋남이 쌓이다 보면,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해지고, 말투가 퉁명스러워진다. 수면 부족이 부부 사이를 조금씩 갉아먹는 것이다. --- 나도 한때는, 이 문제를 그냥 참아야 하는 일로 여겼다. 부부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참는 것과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은 다르다.  솔직하게 말해서 병원을 가던지 다른 방에서 자던지, 어떤 개선방법을 찾는 것도 좋겠다.  --- 코골이는 단순한 잠버릇이 아닐 수 있다.  수면무호흡증이 동반되는 경우, 자는 동안 산소 공급이 불규칙해져 당사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낮에 이유 없이 졸리거나,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다면 한 번쯤 이비인후과나 수면 클리닉을 찾아볼 만하다. 혼자 끙끙 앓기보다 의사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옆에서 잠을 설치는 배우자를 위해서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 취침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  등을 대고 누우면 혀가 뒤로 처지면서 기도가 좁아진다. 옆으로 돌아눕는 것만으로 코골이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베개 높이를 조절하거나, 목과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편안한 위치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술은 근육을 이완시켜 코골이를 악화시키므로, 저녁 음주는 가능하면 줄이는 것이 좋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편안한 밤이 다가오리라 생각한다. --- 부부가 오래 함께 살다 보면, 서로의 잠버릇이 그 사람의 일부가 된다.  거슬리기도...

블로그 글을 장려하는 동영상이, 요즈음 유튜브에 많이 나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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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유튜브를 켜면, 블로그로 월 수백만 원을 번다는 영상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섬네일은 화려하고, 제목은 자극적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솔깃할 만하다. 나도, 그런 영상을 몇 편 보았다. 그런데, 몇 번 보면 금방 이상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블로그로 돈을 잘 버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 방법을 알려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 그 영상들의 구조는, 대부분 비슷하다. 처음엔 무료 강의를 해준다. 무료 전자책도 준다. 진입 장벽을 없애고, 일단 앉혀놓는 것이다. 이걸 강의팔이들은 화투판에 앉힌다고 표현한다. 일단, 몇 편 글을 써 보라고 한다. 애드센스(Adsense) 승인이 날리가 만무하다. 그러면, 슬슬 유료 강의 이야기가 나온다. 블로그 수익보다, 강의 수익이 훨씬 크다 는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콘텐츠를 파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사람의 기대를 파는 것이다. ---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솔직히 말하면, 블로그의 황금기는 이미 지나갔다는 이야기가 많다. 애드센스 승인은 몇 해 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고, 승인을 받아도 수익을 내기까지의 길은 길고 좁다. 여기에 AI의 등장이 흐름을 더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검색 한 번으로 원하는 정보를 요약해서 받아볼 수 있는 세상에서, 정보성 블로그 글이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끝물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 그렇다면, 블로그를 쓰지 말아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시작하면 상처를 받기 쉽다 는 것은 분명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애드센스 승인이 늦어지고, 방문자가 오지 않고, 쓴 글이 묻혀버릴 때, 허탈감이 제법 있다. --- 이런 이유로, 블로그는 취미로 하는 것이 좋다. " 수익이 따라오면 좋고, 따라오지 않아도 그만이다 "라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닿으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수익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

나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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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그냥,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과 너무 개인적인 것에 대한 물음이라는 생각에서, 나이를 절대 묻지 않습니다. --- 상대가 몇 살인지 알게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해서 대화가 어색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는 그 사람의 본질, 인성,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훨씬 더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소수의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 나이를 묻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듯 합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어색한 침묵을 메우기 위해서도, 심지어 친해지려는 의도로도 나이를 묻습니다. 모임에 나가면 열 마디가 채 오가기도 전에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숫자 하나로 호칭이 정해지고, 말투가 정해지고, 관계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 물론, 이것이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좌표였습니다. 누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지, 누가 술을 따르는지, 밥값은 누가 내는지. 오랫동안 나이는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이는 꽤 사적인 정보입니다. 외국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큰 실례로 여깁니다. 연봉을 묻거나 몸무게를 묻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요.  제가 외국에서 교수를 할 때, 나의 나이를 물어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안 물어봤구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해왔던 그 질문이, 다른 문화의 눈으로 보면 선을 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이를 묻는 것이 왜 당연하지?"...

부부 사이에도 '개인 시간'과 '자기 방'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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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 당신, 가끔 나 없이 혼자 있고 싶지 않아? "  오 귀신인데; 당연히 그렇다. 와이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내기가 어쩐지 미안했다. 오래 함께 산 사람에게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 마치 그 사람이 싫어진 것처럼 들릴까봐.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삼켰다. 그렇지만, 며칠 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 그러고 보면, 우리는 부부 사이의 '거리'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가까울수록 좋은 것, 붙어 있을수록 사이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오랜 세월 몸에 배어 있었다.  젊었을 때는 일과 육아로 바빠서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귀했으니, 그 생각이 문제가 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독립하고, 은퇴가 가까워지고, 집에서 둘이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히려 더 답답하고, 사소한 것에 짜증이 나고, 말이 줄어드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바라던 시간이었는데, 막상 그 시간이 오자 어색해진 것이다. --- '자기 방'이라는 말이 나오면, 어떤 분들은 쓴웃음을 지을 수도 있다.  평생을 좁은 집에서, 빠듯한 살림으로 버텨온 분들에게 방 하나를 온전히 혼자 쓴다는 말은 사치처럼 들릴 수 있다. 자녀 방, 안방, 거실, 그렇게 나누다 보면 어른들의 '나만의 공간'이란 처음부터 없었던 집도 많다.  그러니 이 글이 공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이야기처럼 들릴까봐, 먼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 하지만, 내가 말하는 '자기 방'은 꼭 물리적인 방이 아니어도 된다. 아내가 낮잠을 자는 사이 베란다에 나가 혼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남편이 뉴스를 보는 동안 부엌 한켠 작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라디오를 듣는 것, 이른 아침 가족이 일어나기 전 혼자 동네를 한 바퀴 걷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 중요한 것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그 시...

용돈 주는 자녀와 용돈 받는 부모 사이의 미묘한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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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이 오가는 자리에는, 항상 감정도 함께 따라온다.   이것이, 가족 사이일 때는 더욱 그렇다. 자녀가 내미는 봉투 하나에 부모는 묘한 복잡함을 느낀다. 고맙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존심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 감정은, 누구나 느끼는 것 같다.  역할이 뒤바뀌는 순간 오랫동안, 부모는 주는 사람이었다.  손을 내밀면, 채워주는 것이 부모의 자리였다. 이 역할이, 어느 날 조용히 뒤집힌다. 자녀가 월급봉투를 받기 시작하고, 명절이 되면 흰 봉투를 건네오는 날이 온다. 받는 순간, 부모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내가 이제 받는 쪽이 됐구나." 이 감각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삶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느낌에 가깝다. 누군가에게 기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라 해도, 부모에게는 적응이 필요한 변화다. 자녀 쪽의 마음도 단순하지 않다 자녀라고 해서, 용돈을 건네는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여기에는 효도하고 싶은 마음, 오래 걱정을 끼쳤다는 미안함, 이제는 내가 뭔가를 해드릴 수 있다는 작은 안도감이 섞여 있다.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의 기대가 끼어들기도 한다. 내가 이만큼 챙기고 있으니 부모님도 내 사정을 알아주셨으면, 너무 서운한 소리는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 말이다. 말로 꺼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용돈이라는 봉투 안에는, 이렇게 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 부모의 자존심과 감사 사이에서 부모 세대, 평생을 스스로 벌고 쓰며 살아온 분들에게 자녀의 용돈은 감사함과 동시에 미묘한 불편함을 준다. 받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괜찮다, 됐다"며 손사래를 치는 것도, 사실은 감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거절 안에 자존심이 있고, 이 자존심 안에 긴 세월이 있다. 자녀가 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달라고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

가치있는 삶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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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오랜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다고 하였다.   짧은 통화였지만, 끊고 나서 한참 동안 따뜻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참 잘 살고 있구나.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그 작은 마음 씀씀이 하나로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젊었을 때는 꽤 크게 생각했다.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기준이 별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성취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가느냐 가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맡은 일에 충실하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사실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닌, '이 일에 내 마음을 두는 것이면 된다'라는 생각 으로 살아온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한 일에 대하여 내 자신이 만족한다면, 그러면 된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누가 보던 보지 않던, 이것이 내 역할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는 것. 이 태도 안에, 내 삶의 의미와 무게가 담겨 있다. --- 그러고 보면, 주위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도 거창한 데서 나오지 않는다. 길을 걷다 무거운 짐을 든 이웃에게 문을 잡아주는 일, 힘들어 보이는 후배에게 밥 한 끼 먹자고 건네는 말, 오래 연락 못 했던 친구에게 문자 한 줄 보내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쌓여서 관계가 되고, 관계가 쌓여서 삶이 된다 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삶도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 ---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다 알지는 못한다. 다만 오늘 하루, 내가 맡은 자리에서 성실하고 주위를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같이 보면 좋은 글 1....

유튜브를 Gemini로 요약정리하는 방법: 시니어를 위한 디지털 비서 활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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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유튜브가 대장인 세상입니다.   건강 정보부터 요리법, 세상 돌아가는 소식까지 유익한 영상이 참 많지요. 그런데 가끔은 영상 길이가 너무 길어서 끝까지 보기 버겁거나, "그래서 결론이 뭐야?" 하고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 이럴 때 우리 곁에 있는 똑똑한 AI 비서 'Gemini(제미나이, 미국은 제머나이)'를 활용하세요. 그러면, 긴 영상도 단 몇 초 만에 핵심만 쏙 뽑아 정리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복잡한 논문을 읽을 때, AI를 활용하면 간단히 핵심을 정리해줘서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AI를 이용하여 되지만, 유튜브는 Gemini와 같은 Google계열사라 사용이 편리 합니다. 이런 이유로, Gemini를 추천합니다. ---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Gemini 사이트에 접속한 뒤, 보고 싶은 유튜브 영상의 주소(URL)를 복사하시고 붙여넣으세요. 그 다음, "이 영상 내용 요약해 줄래?"라고 하시면 끝.  휴대폰이든 컴퓨터든,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마치 돋보기를 들고 신문을 읽어주는 비서처럼, Gemini가 영상 속 복잡한 이야기들을 번호까지 매겨가며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줍니다. --- 특히, 이 기능은 정보가 많은 강의나 뉴스 영상을 볼 때 빛을 발합니다. '연금 수령액 늘리는 법' 같은 30분짜리 영상을 다 볼 시간이 없을 때, 이 방법을 쓰면 1분 만에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기 쉬운 우리 세대에게, 이 기능은 시간을 아껴주고 눈의 피로도 덜어주는 고마운 지팡이가 되어줍니다. --- 처음에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격차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편리함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즐겨 보시는 유튜브 영상 하나를 골라, Gemini에게 요약을 부탁해 보세요. 화면 너머의 비...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피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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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결국 다 죽는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 지금 이 세상에 거의 안 계신다. 죽음 앞에서 보면, 오늘 누군가와 다퉜던 일이 얼마나 작은 일인가. 평생 쌓아온 감정의 앙금들도, 결국 한 줌 흙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생각은, 나의 가슴을 넓어지게 한다.   ---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자주 부딪히는 걸까.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갈등은 상대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생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지. 왜 저런 식으로 말하지. 왜 나와 다르지. 그 '다름'을 이상하게 보는 순간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 십인십색(十人十色)이라는 말이 있다.   열 사람이면, 열 가지 색깔이 있다는 뜻이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상대를 바꾸려는 마음이 사라진다. 그리고 갈등의 절반은, 여기서 끝난다.  --- 나와 다른 사람을, 굳이 설득하려 할 필요가 없다. 내 방식이 맞다고 증명할 필요도 없다.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할 삶이다.  내가 옳다고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 다름을 인정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저 사람이 나와 다르게 행동해도, 그러려니 하게 된다. 저 사람이 나와 다른 말을 해도, 그런 생각도 있구나 하고 넘길 수 있다. 이것이 무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가장 성숙한 시선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이 시간을, 누군가와 다투는 데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저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라는 것을 그냥 인정하는 것 이다.  --- 사람은, ...

명절에 자녀와 싸우지 않고 웃으며 헤어지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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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날 밤, 나는 거실을 한 번 더 쓸었다.  가족만 잠깐 들리는 가벼운 자리였지만, 그냥 준비였다.  오면 잘해줘야 한다,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오래된 마음.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명절이 긴장된다 한다. 애들이 커서 그런다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잔소리때문이라 했다. 애들이 오면 한마디 하는데, 자기가 말하면 아이의 표정이 굳는다나 뭐나. 오면 차가 막혀서 일찍 간다는 말에 친구는 아직 더 있다 가면 안 되냐고 했고, 그게 또 작은 상처가 된다했다. 원래 나는 내 스스로의 무능을 잘 알고 있기에, 조언을 하지 않는다. 지인이 하두 몇 번이나 요청해서, 다음과 같이 해보면 어떠겠냐고 넌지시 말했다.  딱 한 가지만 바꿔라.  애들에게 더 묻지 마라: 언제 아이 낳을 거냐, 요즘 회사는 어떠냐, 그쪽 부모님은 잘 계시냐. 이런 말들이 나한테는 그냥 안부인데, 아이들한테는 꽤 무거운 질문일 수도 있다.  이 말을 듣고, 친구가 이번 명절에는 안 물어봤더니 아주 잘 지나갔다고 한다. 말이 줄었는데 오히려 웃음이 늘어났다고 한다. 신기한 일이었다고 하였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을 한 가득 부쳐놓고 "더 먹어라, 이것도 먹어봐라" 하면, 아이들은 이게 부담이될 수도 있다. 그냥 상 위에 올려놓고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하면 된다. 이거 너무 섭섭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게 편하다. 나도, 아이들도. 웃으며 헤어진다는 거, 별거 아니다. 배웅할 때, 차가 골목을 돌아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지 않는 것. 전화로 "어 잘 도착했어?" 한 마디 하고 더 붙잡지 않는 것. 명절이 끝난 후 며칠도 않되서, 문자로 "잘 지내지?" 하고 먼저 짧게 안부를 건네는 것. 크게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덜 하는 것들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조금의 여백를 남겨놓는 것 , 이게 좋을 수도 있다. 명절이 오면 어떤 말을 덜...

봉사활동을 통해 발견하는 '나누는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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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에 주위에 어려운 노인분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 봉사가 있다.  맨날 와이프가 하는 걸 보다가, 어느날 하루 나도 해보았다.  어렵지는 않았고, 그냥 잔잔한 마음이었다. 몸으로 하는 일이라, 잡념이 안 들어서 좋았다.  --- 학자들의 봉사는, 다른 연구자들이 쓴 논문에 대한 무료 리뷰(review)를 하는 것이다. 1년에, 수 십- 수 백편의 리뷰요청이 전 세계에서 온다. 이거 피곤하다. 내 일도 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지친다. 아무런 보상이 없다.  그렇지만, 나의 논문도 어느누가 리뷰를 하여주어서, 출판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왠만하면 리뷰요청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것이 학자들의 봉사활동이다. --- 봉사란,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 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경험과 시간이, 누군가에게 실제로 닿는다는 감각. 이것은 돈을 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충족감인데, 성과가 아니라 관계에서 오는 느낌이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 Marcel Mauss ) 는 '증여론'에서 주는 행위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묶는 근본적인 힘 이라고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넬 때, 그 행위는 나와 상대방 사이에 보이지 않 는 연결을 만든다. 그 연결이 쌓이면, 사람은 덜 외로워진다. 받는 쪽도, 주는 쪽도.   물론, 봉사가 늘 따뜻하고 보람찬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내 선의가 상대에게 제대로 닿지 않는 것 같아 허탈할 때도 있고, 지속하는 것이 버거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계속하게 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에 잠시 발을 들여놓는 경험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바꿔놓는다.   --- 나누는 삶이란 결국 소유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넓게 사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내 시간과 관심을 나 자신에게만 두는 ...

사진을 찍어 이름을 검색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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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사진만 찍으면,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산에 가셨는데, 산삼인줄 모르시고 내려오시면 억울하시지 않겠는가;; 이런 억울함에서, 해방시켜드리고자 한다. ··· 어느 날, 아내가 화분을 들고 들어오면서 물었다. "이게 무슨 꽃인지 알아?"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 애가 나의 전공이, AI 수학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면, 몇 초 만에 이름을 알려주는 세상이다. ··· 이 기능은 아주 쉽다.  예쁜 꽃의 이름이 궁금하실 때,  사진을 찍으시면 된다. 구글 렌즈(Google Lens)나 네이버 앱 렌즈를 이용 하시면 된다. 그러면, 이름이 뜬다.  ··· 방법은, 무지 쉽다.  천천히 따라하시면 된다. 먼저, 휴대폰에서 구글 검색창 오른쪽에 작은 카메라 모양 아이콘 이 있다. 그것을 누르면 바로 카메라가 켜지는데, 찍으시면 된다. 그 다음, AI 검색결과를 보시면 된다.  찍는 것이 귀찮으시면, 알고 싶은 꽃이나 식물, 표지판, 음식 앞에 폰을 가져다 대면 된다. 흔들리지 않게 가만히 들고 있으면, 화면 아래쪽 중앙에 돋보기 모양이 나온다. 이걸 누르시면, 관련 정보가 뜨기 시작한다. AI 검색을 하실 것을 추천한다. 처음에 한 번만 해보면, 그다음부터는 쉽다.  ··· 만약, 구글렌즈가 작동이 안된다면, 설정에서 카메라설정을 허용 하시면 된다. 이 기능이, 특히 유용할 때가 있다. 약봉투에 작은 글씨로 적힌 성분명을 읽고 싶을 때, 오래된 사진 속 간판의 글자를 알고 싶을 때, 혹은 시장에서 처음 보는 채소 이름이 궁금할 때다.  이 기능을 잘 활용하신다면, 산에서 산삼을 보고도 지나치는 어리석은 짓을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산에서는, 거의 인터넷접속이 된다. 만약 안된다면, 사진 찍으시고 위치를 잘 기억하신 후, 내려오시면 된다. 다음에 찾아가시면 된다.  ···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