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관하여
저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나이를 묻지 않습니다. 그냥,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과 너무 개인적인 것에 대한 물음이라는 생각에서, 나이를 절대 묻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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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몇 살인지 알게 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모른다고 해서 대화가 어색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는 그 사람의 본질, 인성,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훨씬 더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소수의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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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묻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듯 합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어색한 침묵을 메우기 위해서도, 심지어 친해지려는 의도로도 나이를 묻습니다. 모임에 나가면 열 마디가 채 오가기도 전에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숫자 하나로 호칭이 정해지고, 말투가 정해지고, 관계의 방향이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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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것이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좌표였습니다. 누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지, 누가 술을 따르는지, 밥값은 누가 내는지. 오랫동안 나이는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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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이는 꽤 사적인 정보입니다.
외국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큰 실례로 여깁니다. 연봉을 묻거나 몸무게를 묻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요. 제가 외국에서 교수를 할 때, 나의 나이를 물어본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안 물어봤구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해왔던 그 질문이, 다른 문화의 눈으로 보면 선을 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이를 묻는 것이 왜 당연하지?"라는 질문 하나쯤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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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이보다 사람 자체를 먼저 보게 되었습니다.
나이로 사람을 줄 세우는 것도,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려도, 말 한마디에 무게가 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반듯한 사람이 있습니다.
경청할 줄 알고, 틀리면 인정할 줄 알고, 상대를 편하게 만드는 사람. 이런 사람 앞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것이 아무런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배우게 됩니다. 나이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 사람에게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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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나이가 꽤 들었어도 자기 이야기만 하고, 틀려도 인정할 줄 모르고, 어린 사람을 아랫사람 다루듯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길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깊어지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사람의 품격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제가 사는 APT에, 맨날 새치기하는 영감님이 계십니다. 위로 올라갈라고 엘리베이터앞에 서 있으면, 뒤에서 잽싸게 아래로 내려가는 버튼을 누릅니다. 대 여섯 번 당했습니다. 참으로, 더럽게 세상을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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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이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를 보여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입니다.
얼마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사람을 만듭니다.
많이 넘어져 보고, 많이 틀려 보고, 그것을 조용히 돌아볼 줄 아는 사람.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 나이와 상관없이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편안합니다. 그 사람이 20이든 80이든, 대화가 끝나고 나서 뭔가 남는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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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런 사람이 좋습니다. 나이로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말과 눈빛을 먼저 보게 되는 사람.
물론, 저 자신도 그 기준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어쩌다 문득, 상대의 나이를 의식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그런 문화 안에서 살아왔으니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나이를 먼저 묻거나 나이로 사람을 재단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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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초월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실제로 그런 관계를 맺어본 적이 있습니다.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고, 틀리면 솔직하게 말하고, 웃을 때는 같이 웃었습니다. 나이가 화제에 오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 만났습니다. 그런 관계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더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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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저는 나이를 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나이보다, 그 사람의 말과 눈빛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니까요. 나이는 그냥 지나온 시간일 뿐,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 저는 그것이 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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