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도 '개인 시간'과 '자기 방'이 필요한 이유
어느 날,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당신, 가끔 나 없이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오 귀신인데; 당연히 그렇다.
와이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내기가 어쩐지 미안했다. 오래 함께 산 사람에게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면, 마치 그 사람이 싫어진 것처럼 들릴까봐.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삼켰다. 그렇지만, 며칠 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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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우리는 부부 사이의 '거리'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살아왔다. 가까울수록 좋은 것, 붙어 있을수록 사이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오랜 세월 몸에 배어 있었다.
젊었을 때는 일과 육아로 바빠서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귀했으니, 그 생각이 문제가 될 일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독립하고, 은퇴가 가까워지고, 집에서 둘이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히려 더 답답하고, 사소한 것에 짜증이 나고, 말이 줄어드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바라던 시간이었는데, 막상 그 시간이 오자 어색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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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방'이라는 말이 나오면, 어떤 분들은 쓴웃음을 지을 수도 있다.
평생을 좁은 집에서, 빠듯한 살림으로 버텨온 분들에게 방 하나를 온전히 혼자 쓴다는 말은 사치처럼 들릴 수 있다. 자녀 방, 안방, 거실, 그렇게 나누다 보면 어른들의 '나만의 공간'이란 처음부터 없었던 집도 많다.
그러니 이 글이 공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이야기처럼 들릴까봐, 먼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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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말하는 '자기 방'은 꼭 물리적인 방이 아니어도 된다. 아내가 낮잠을 자는 사이 베란다에 나가 혼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 남편이 뉴스를 보는 동안 부엌 한켠 작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라디오를 듣는 것, 이른 아침 가족이 일어나기 전 혼자 동네를 한 바퀴 걷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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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아무에게도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그냥 '나'로 있을 수 있는가이다. 이 짧은 여백이, 사람을 다시 숨 쉬게 한다.
함께 있다는 것이, 언제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나란히 앉아 각자의 것을 하면서도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 그것도 충분히 따뜻한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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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각자의 시간이 있어야 다시 서로에게 할 이야기가 생긴다.
아내가 혼자 산책을 다녀오면, 그날 본 것들을 저녁 밥상에서 이야기해준다. 길가에 핀 꽃 이름을 검색해봤다거나, 동네 슈퍼가 바뀌었다거나. 작은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가 있어서 저녁 밥상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 나도 책을 읽고 읽을 때, 누가 말 시키면 생각이 끊겨져서 짜증이 난다. 물론, 그것을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지만서도. 책 읽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져서 아내 곁에 앉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다시 다가가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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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건강한 분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나치게 붙어 있으면 서로의 감정이 너무 쉽게 전염된다. 한 사람이 피곤하면 둘 다 피곤해지고, 한 사람이 불안하면 둘 다 불안해진다.
그런데 각자의 시간이 있으면, 감정이 조금 분리된다. 누가 오늘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온 뒤라면 그 감정에 덜 휩쓸린다.
이것은, 냉정한 거리두기가 아니다. 오히려, 오래 함께하기 위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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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부부 사이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쉬는 시간'이 되어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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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혼자 있어야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솔직하게 서로에게 말할 수 있을 때, 부부는 더 단단해진다.
오늘 저녁, 배우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은 혼자만의 시간이 있나요?"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한번 물어보았으면 한다. "나는 요즘 제대로 쉬고 있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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