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정돈의 미학: 물건을 비우니 마음이 채워진다

다시 만나는 나

 

서랍을 열었다가 그냥 닫은 적이 있으신가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를 때, 그 답답한 느낌. 저는 60이 넘어서야, 그 서랍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버리지 못하는 마음의 정체

저는 물건을 어느 정도 버리는 사람인데도, 집안에 쓸데없는 물건이 여전이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쓸 것 같아서, 돈이 아까워서, 또는 그냥 무심결에 쌓아두다 보니 집 안 곳곳이 버려도 되는 물건들이 제법 있더군요.

 

심리학에서는 이걸 '소유 효과'라고 부른다 합니다. 한번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실제 가치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지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손이 따라주질 않죠. 

며칠 전, 오래된 택배 박스를 정리하다가 1998년도에 쓴 다이어리를 발견했습니다. 펼쳐보니 그때의 걱정들이 빼곡했습니다. 그 걱정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는지... 물건도, 걱정도 결국 비워지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비움이 주는 뜻밖의 선물

정리를 다시 시작하면서, 제일 달라진 건 아침이었습니다. 옷장 문을 열었을 때 바로 오늘 입을 옷이 눈에 들어오는 그 느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5분이 하루를 얼마나 가볍게 시작하게 해주는지 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물건이 줄어드니 청소가 쉬워졌고, 청소가 쉬워지니 집이 쉬어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게 이렇게 귀한 것인 줄 몰랐습니다.

도쿄의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고 했지만, 저는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60이 넘으면 설레지 않아도 쓸모 있는 물건들이 있고, 설레지만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시절의 물건도 있습니다. 그 분별이, 정리의 진짜 묘미입니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너무 의욕적으로 달려들면 금방 지칩니다. 저도 처음엔 "이번 주말에 다 정리한다!" 했다가, 힘들어 포기하였습니다. 

심리적 저항이 적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이 순서가 무난했습니다.


만료된 약, 식품부터 시작하세요. 거리낌 없이 버릴 수 있고 즉각적인 성취감이 옵니다. 그다음은 다 쓴 볼펜과 못 쓰는 충전기입니다. 오래된 잡지와 카탈로그, 맞지 않는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이즈가 다시 맞을 날은 솔직히 잘 오지 않더라고요.

추억이 담긴 물건은 가장 나중에, 가장 천천히, 가장 따뜻하게 대하면 됩니다.



하루 15분이면 충분합니다

큰 정리를 한 번에 하려고 하면 지칩니다. 대신 하루 15분, 서랍 하나씩만 해보세요. 작은 성공이 쌓이면 어느새 집이 달라집니다.

1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은 솔직하게 작별을 고해 보세요. 버리기 아까운 물건은 필요한 분께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물건이 살아나고 마음도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추억이 담긴 물건은 사진으로 남기고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기억은 간직하되, 공간은 비울 수 있습니다.



물건이 줄어들면 관계가 보입니다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 집을 정리하면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이거 어디서 났어?" "이게 아직도 있었어?" 하며 웃고, 오래된 사진 앨범 앞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물건을 정리하는 건 결국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았는지, 어떤 시간이 내게 의미 있었는지, 그걸 들여다보는 조용한 시간이 됩니다. 

비운 자리에, 이제는 여유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정리는 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요즘 세상은 무조건 더 많이, 더 빠르게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정리를 통해 배우는 건 정반대의 지혜입니다. 더 적게 갖되 더 잘 쓰는 것. 더 느리되 더 음미하는 것.

60이 넘으니, 몸도 마음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무릎이 아프면 낮은 곳에 두던 무거운 짐을 눈높이로 올려야 하고, 눈이 침침해지면 서랍 안을 간결하게 정돈해야 찾기 쉽습니다. 정리는 나이 들어가는 몸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또, 언젠가 내 뒤를 정리할 가족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미리 정돈해두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편안해집니다. 



오늘 딱 서랍 하나만 열어보세요. 대단한 결심 없이도 됩니다. 물건 하나를 내보낼 때마다 그 자리에 조금씩 여유가 생깁니다. 그 여유가 쌓이면 어느 날, 마음이 가득 차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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