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진짜 이유

 

peace of mind (free image)


살다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이 있다.

그 일을 생각하면 항상 몸이 떨렸고, 그 인간을 생각하면 항상 기분이 나뻤다. 아이와 관계된 일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 인간이, 나에게 종교의 필요성을 가르쳐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의식적으로, 잊고 사는거다. 이것이, 나름대로 잘 정리한 것이라고 믿고 산다. 

이런 마음과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일까?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이렇게 이해한다. 용서는 상대방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 그 사람이 한 짓을 괜찮다고 인정하는 것. 혹은 다시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선언.

그러니, 용서하기 싫은 것이다. 당연하다. 이 사람은, 인간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기색도 없었다. "양심이 그래도 있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 살겠고, 양심이 없다면 하늘의 천벌을 받으리라"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런 인간을, 내가 용서해야 하는가? 

그런데, 용서는 그 인간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용서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이건, 착하게 살자는 도덕 교과서 이야기가 아니다.



미움은 나를 갉아먹는다

분노와 원망을 오래 품고 살면, 몸이 먼저 안다.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어진다. 그냥 피로하다. 특정 장소나 특정 이름 앞에서, 심장이 빨라진다. 소화도 잘 안된다. 이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심리학에서는 오래된 분노를 '자기 감옥'이라고 한다. 나는 그 인간에게 복역을 선고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감옥 안에 앉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쁜 인간들은, 아무렇지 않게 잘 산다. 잘 자고, 잘 먹고, 세상 편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오랬동안 혼자서 속을 끓이고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억울하다. 상처는 그 인간이 줬는데, 그 상처를 계속 들여다보며 아파한 것은 나였다.



용서란, 그 사람을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놓아주는 것이다

어느 날 와이프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 인간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다. 

"당신 아직도 그 사람한테 묶여 있구나."

묶여 있다. 그 말이, 밤새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그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을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가 그 인간에게 오랫동안 묶인 채로 살아온 것이었다. 그 인간이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인간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용서한다는 것은, 그 일이 괜찮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인간이 옳았다고, 고개를 숙이는 것도 아니다. 다시 가까워지겠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용서는 이것이다.

그 일이, 더 이상 나의 오늘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



어떻게 용서하는가

용서는, 결심이나 생각 한 번으로는 되지 않는다. 

'오늘부터 용서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다음 날 그 일이 생각이 나면 다시 울컥한다. 그러면 또 '나는 역시 안 되나 보다'라고 자책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것 같다.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방향이다. 용서는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그 분노에게 더 이상 내 삶의 운전대를 맡기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요즘도 생각이 난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이 한다.

그래, 그 일이 있었지. 지금도 용서가 안돼. 하지만, 나는 오늘을 살아야 해.

그리고 창문을 열거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거나, 그냥 자리에서 일어난다.

매번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잘 된다. 어떤 날은 또 화가 난다. 그래도 괜찮다. 방향이 중요한 것이지, 완벽한 도착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이래서, '사람들이 종교생활을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용서 이후의 삶

아내의 말을 들은 그 봄 이후로, 나는 의식적으로 그 짐승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내려놓으려 했다.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가끔 그 기억이 올라온다. 그런데 예전처럼 가슴이 쪼이지는 않는다. 그냥 오래된 흉터를 손으로 만져보는 느낌이다. 아프지는 않은데, 있긴 있는, 그런 것.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내 일상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아침이 더 선명해졌다. 밥이 더 맛있어졌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였다.



언젠가,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이 남은 시간을, 오래된 분노를 껴안고 보낼 것인가. 아니면,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온전히 느끼며 보낼 것인가.

용서는 착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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