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다

 peace of mind (free image)


나는, 흰머리가 좋다. 

이발소에서 "염색하고 가실 거죠?" 물어보면, 나의 대답은 항상 같다. "절대 안해요." 

"왜 안하세요?"

"불쌍하게 보일라고요." 이건 농담이고, 그저 자연스러운게 좋아서이다. 개인적으로, 머리가 없는 것 보다는, 흰 머리가 좋다. 

세월이 머리 위에 내려앉은 것을, 굳이 감춰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흰머리는, 감사한 일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증거다.



강단에 서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학생들과 나 사이에는 40 여년의 간격이 있다. 학생들은 아직 실패를 많이 모른다. 사랑도, 상실도, 긴 기다림도 가슴으로 겪어보지 못한 나이다.

나는, 젊음이 그리 부럽지 않다. 

젊음이 좋은 것은 알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의 나는, 많은 것을 신경썻다. 남들의 시선, 실수, 뒤처지는 것. 그러느라, 정작 순간순간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지금의 내가, 좋다.



누군가 물었다. "아직도 가르치는 게 즐거우세요?"

잠깐 생각했다. 즐겁다는 말이 맞는지. 즐거움이라기보다는 — 의미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학생이 수업 후에 찾아와 "오늘 말씀 중에, 이 부분이 마음에 남았는데요" 하고 말할 때. 그 눈빛에서 뭔가 불이 켜지는 것을 볼 때. 이럴 때는, 내 일의 의미를 다시 인식하게 된다.

흰머리는, 축복이다.



나이 든다는 것을 두려워하던 때가 있었다.

오십대 중반까지, 나는 내가 쓴 논문 수에 집착하였다. 100여 편 쓴 거 같다. 더 나이들면, 논문 쓰기 힘들텐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게 두려웠다. 이것이 학자로서의 나의 삶의 가치라 생각해왔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많이 쓰는 것 보다는, 깊이 있는 한 편이 더 났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나의 쓸모는, 논문 수로 증명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만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필 때가 되면 피는 것이었다.



요즘 나는 천천히 걷는 것을 즐긴다.

강의가 없는 오후, 캠퍼스 언덕길을 걷는다. 한바퀴 돌면, 운동이 좀 되고 생각이 정리된다. 일상적인 생각도 있고, 학술적인 생각들도 있다. 그냥 걷는다. 나무도 보고, 바람 소리도 듣고, 생각도 정리하고, 또 어떤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게 나에 있어서, 일종의 명상이다. 그리고 고마울 뿐이다. 더 나이들어서 아퍼지면, 이것도 못 할 것이라 생각한다. 

걸으면서, 흰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느낌이 참 좋다. 젊었을 때는, 걷는 즐거움을 알지 못했었다.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겉으로만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런데, 나는 아니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라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무릎도 아프고, 눈도 침침해지고, 머리도 잘 안 돌 때도, 모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라고 하고 있다.


60대 중반인 지금, 갖게 된 것들도 많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서두르지 않는 여유, 틀려도 괜찮다는 담대함, 그리고 — 흰머리를 그냥 두는 배짱.

이게, 어디 쉽게 생기는 것인가.



오늘도 강단에 선다. 머리는 반백이지만, 아직은 좋다.

이걸로 충분하다.



봄 햇살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지금, 참 좋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1.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진짜 이유

https://jian-peace.blogspot.com/2026/04/blog-post_10.html
2. 몸이 아프니, 많은 것이 보인다

https://jian-peace.blogspot.com/2026/04/blog-post_6.html
3. 매일 아침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https://jian-peace.blogspot.com/2026/04/blog-post_3.html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받아들인다는 의미

은퇴 후 부부 사이, '따로 또 같이' 행복해지는 3가지 원칙

은퇴한 남편과 24시간 함께하기, 숨 막히지 않는 거리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