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을 높이는 중년의 옷차림과 자세
옷장을 제대로 들여다본 것이, 아이 때문이었다.
"아빠, 그 옷 언제 산 거야?"
그냥 궁금하다는 듯 툭 던진 말이었는데, 나는 그게 대답이 안 됐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마도 20년은 넘었지 않았을까. 옷에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살아서, 오래된 옷을 그냥 입고 다녔던 것이다.
그날 옷장을 열어보니, 대부분이 비슷했다. 양복들하고 그냥 막 입는 옷들, 2 종류였다. 내가 산 옷은, 없었다. 와이프나 친구들이 사다 주거나 그냥 준 것들, 그런 것 들이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나를 위한 선택을 멈춘 걸까.
옷은 생각보다 솔직하다.
무엇을 입느냐는, 오늘 자신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중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외모에 쏟는 신경을 줄여간다. 다들 그러니까, 나이 들면 그러는 거니까, 이제 그런 거에 신경 쓸 나이는 아니니까.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건네며, 거울 앞을 빠르게 지나친다.
하지만 자존감이란 게 거창한 철학에서 오는 게 아니더라. 아침에 거울을 보며 '오늘 나쁘지 않은데'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 그 작은 순간에 자존감이 살아 있다.
옷을, 잘 차려입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싼 옷을 사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오늘 내가 나를 위해 작은 선택 하나쯤은 하고 있는지, 그것을 묻고 싶은 거다.
나는 그 뒤로 작은 실험을 해봤다.
백화점도 아니고, 그냥 동네 가게였다. 평소 잘 안 입던 짙은 네이비 셔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입어보니, 얼굴이 좀 살아 보이는 것 같았다. 비싸지 않아서, 그냥 샀다. 집에 와서 입고 나가니, 아내가 한마디 했다.
"어, 오늘 달라 보인다."
특별히, 더 말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 한마디였는데, 하루가 조금 달랐다. 발걸음이 아주 조금 가벼웠다. 그게 다였는데, 그게 의외로 컸다.
옷만이 아니다. 자세도 그렇다.
중년 남자들을 보면, 나도 포함해서, 어깨가 자꾸 앞으로 말린다. 오래 앉아 있어서이기도 하고, 몸이 무거워져서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먼저 굽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식 문제, 돈 문제, 노후 걱정, 건강 염려 등. 이런 무게들이 등에 쌓이면, 자연스럽게 몸도 앞으로 숙여지는 것 같다.
어느 날,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나이 들수록 등을 펴야 해. 등이 굽으면 마음도 굽더라고."
처음에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며칠 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옆모습을 보다가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내 등이 좀 굽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날 이후로, 의식적으로 등을 펴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하고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조금씩 습관이 됐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작은 일에 덜 위축되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가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게, 직접 겪어보니 정말이었다.
화장도, 스타일도, 다이어트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다. 다만,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라봤는지, 옷 하나 고를 때 '나는 어떤 게 좋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는지, 걸을 때 어깨를 조금이라도 펴봤는지. 그런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서 자존감이 된다.
중년의 자존감은, 대단한 성취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자기 존중의 습관들에서 온다.
오늘 나를 위해 셔츠 하나 골라 입는 것, 거울 보며 등 한 번 펴는 것, 신발 밑창 닳은 걸 그냥 두지 않고 바꾸는 것. 그런 것들이 모여서 조용히 말해준다. 나는, 여전히 나를 챙길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올봄에, 나는 오래된 옷들을 버렸다.
아깝지 않았냐고? 솔직히, 조금 아까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감각이 있었다. 낡은 것을 내보내고 나니, 내 안에 작은 공간이 하나 생긴 느낌이 들었다. 그 공간에 무엇을 채울지는, 아직 생각하는 중이다.
중년의 옷차림과 자세란, 결국 그 공간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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