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진로 선택이 내 맘에 들지 않을 때 대처법
아들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기를 바랐던 나와 달리, 아들은 "코인선물거래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지한 눈빛이었고, 이미 몇 달째 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걱정이 많이 되었다. 선물(future)에 관한 것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했으면 좋겠다"라는 말 속에, 뭐가 들어 있었을까
이 한마디 안에는, 참 많은 것이 섞여 있었다. 걱정도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체면 같은 것도 있었다. 주변 친구들 자녀는 의사가 됐다느니, 대기업에 들어갔다느니 하는 소식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인정하기 싫었던 건 따로 있었다. 나는 아들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내가 꿈꿔왔던 아들의 미래와 '너무 달랐다'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그것을 한동안 구분하지 못했다.
부모의 걱정은 진짜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자녀 진로에 개입하고 싶어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가난을 알고, 실패가 얼마나 긴 그늘을 드리우는지 몸으로 안다. 불안정한 직업, 불규칙한 수입, 사회적 시선. 이런 것들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를 살면서 직접 봐왔다.
그래서, 걱정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진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걱정이 진짜라는 이유로 자녀의 선택 위에 올라타버리면, 결국 관계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걱정은 전달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명령이나 통제가 되는 순간 아이는 등을 돌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더 깊이 상처받는다.
나는 그때 어떻게 했나
한 달쯤 지났을까. 나는 아들을 밥 한 끼 먹자고 불렀다. 잔소리를 하려고 부른 게 아니었다. 그냥,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아들은, 자기 생각과 계획을 꺼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자기는 획일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왜 이 일이 하고 싶은지,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고.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건지도 생각해두었다고 했다. 나는 가만히 들었다. 몇 번이나 반박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밥을 다 먹고 나서, 나는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잘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 사회와 주위사람들을 생각하며 살 수 있으면 된다."
이게, 전부였다. 허락도, 응원도 아니었다. 그냥 솔직한 말이었다. 그런데, 아들 얼굴이 조금 펴지는 걸 봤다.
몇 가지 내가 배운 것들
그 이후로, 나는 비슷한 상황을 겪은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것들이 있다.
첫째, 반응과 판단을 분리해야 한다. "그게 되겠어?"라는 말은 판단이다. "그 길이 걱정된다"는 말은 반응이다. 같은 마음에서 나오지만, 자녀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둘째, 한 번에 설득하려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부모의 말이 씨앗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자리에서 모든 걸 쏟아내면, 자녀는 방어적이 된다. 조금씩, 여러 번 나누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셋째, 내 불안을 자녀에게 해결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 이게 제일 어렵다. 자녀가 안정적인 직장을 갖길 바라는 마음 속에는, '그래야 내가 덜 불안하다'는 것도 있었다. 그 불안은 내 것이었다. 아들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녀는 우리의 연장선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게 더 실감이 난다. 자녀는, 우리가 못다 이룬 것을 이어받는 존재가 아니다. 이 아이는, 이 아이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길이, 이 아이에게도 옳은 길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물론,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아들의 선택에, 마음이 무겁다. 그런데, 이제는 이 무거움을 아들에게 짐으로 얹지는 않는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른스러운 방식인듯 싶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 흔들린다. 오래된 습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밥집에서 아들 얼굴이 조금 펴지던 그 순간은 기억한다.
이걸로 만족한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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