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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은 누가 하는 것이 적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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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란 말은 상당히 매력적이면서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안에는 슬픔과 기쁨, 승리와 패배가 들어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의미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실패의 의미입니다. 돈을 벌어서 주위 사람을 도와주면서 사시는 분들도 있고, 병을 얻고 가정이 파괴되고 또 생명까지 버리신 분들도 있습니다.  주식은 과연 누가 하는 것이 적합한가, 한 번은 꼭 생각해봐야 합니다. --- 주식 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현물주식이고, 다른 하나는 선물거래(future)입니다. 이 둘은 비슷해 보여도 성격이 아주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울리는지도 다릅니다. ━━━━━━━━━━━━━━━━ 현물주식, 기다릴 수 있는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주가가 오르면 이익이고, 내리면 손해입니다. 단순합니다. 사려는 종목의 그래프 (graph) 가 오르는 시기인지, 떨어지는 시기인지를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은 필요하겠지요.    현재 기준으로 업종은 AI, 그 중에 제일 좋은 AI가 무엇인지는 스스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현물주식은 미수나 신용거래만 안하시면, 큰 무리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주식은 250만원 기본공제를 한 후, 22% 양도소득세와 15% 배당소득세가 원천징수되는 것은 아시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추세(trend)입니다. --- 1년 기준 평균수익률은 어떨까요. 코스피 기준으로, 5~1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덱스 펀드나 ETF의 경우는, 5~8% 안팎의 수익입니다.   물론,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다는 것은 다 아시는 이야기겠지요. 성공 확률은 어떨까요. 장기적으로 우량주에 투자한 경우 10년 이상 보유 시, 수익을 낸 투자자 비율은 대략 60~7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기 매매를 반복할수록, 이 수치는 급격히 낮아집니다.  ━━━━━━━━━━━━━━━━ 선물거래, 전문가도 어려워하는 영역입니다 이 거래는, 미래의 특정 시점...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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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철이 되면, 사람이 보입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이 때가 되면 보입니다. 어제까지 같은 편이었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오랫동안 쌓아온 관계가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걸 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무거워지는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걸 기회로 삼는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을까. 저는 이 질문을 생각해 왔습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답이 두렵습니다. 전쟁 중에 사람들이 저지른 일들, 권력 앞에서 인간이 선택한 것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온 이 땅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 안에서도,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잔인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 이런 일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그러게 왜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 병이 난 사람 곁에서 왜 평소에 관리를 안 했느냐고 하는 것.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를 안주거리 삼는 것. 이런 것들이 잔인함입니다.  칼을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탐진치(貪瞋癡)'로 설명합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인간의 잔인함은 대부분 이 3가지 뿌리에서 자랍니다.  내가 더 가지려는 욕심, 저 사람이 잘 되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이것이 합쳐질 때, 인간은 놀라울 만큼 차가워집니다. --- 저도 돌아보면 부끄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그래도 내가 났다'라고 안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순간이 칼을 든 것은 아니지만, 마음의 결이 거칠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음공부란 아마 그 결을 스스로 느끼고, 다음에는 조금 다르게 반응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 한 가지만은 지키고 싶습니다. 남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위를 밟는 짓은 하지 말자.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자녀에게 '부담'이 아닌 '비전'이 되는 부모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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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자녀에게 어떤 존재일까.  혹시 나는, 아이에게 짐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 나쁜 뜻이 아닙니다. 자녀도 나쁜 마음이 없고, 나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부모와 자식 사이에 '걱정'이라는 무게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 생활비는 충분하신지, 외롭지는 않으신지. 그 걱정들이 사랑인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아이에게 무거움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습니다. 나는 지금, 자녀에게 '비전'이 되고 있는가? --- 부담이 되는 부모와 비전이 되는 부모는 어떻게 다를까요. 거창한 차이가 아닙니다.  비전이 되는 부모란, 아이가 나를 보면서 "저렇게 늙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입니다. 나이 든다는 것이 쇠퇴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 제 친구 중 한 명은, 환갑이 지나고 나서 수채화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설프고 색도 탁했지만, 꾸준히 그렸습니다. 2년쯤 지나자 그의 그림이 조금씩 달라졌고, 지금은 동네 작은 갤러리에서 전시도 했습니다. 그 친구의 아들이 그 전시장에 왔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덕분에 저도 뭔가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 한 마디가 전부입니다. --- 자녀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의 삶을 채워야 합니다. 아이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아이 없이도 충분히 살아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아이에 대한 가장 깊은 사랑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연락이 뜸해진 자식을 원망하는 시간 대신, 오늘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 아이가 잘 지내는지 걱정하는 시간 대신, 내가 잘 지내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하는 것.  이것이, 진짜 어른의 사랑인듯 합니다. --- 비전이 되는 부모는 완벽한 부모가 아닙니다 . 실패도 하고, 외롭...